사랑과 저주의땅 크레타

2022. 9. 24. 23:32여행

문화 편

이라클리오골목

크레타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중해의 많은 섬들이 그렇겠지만 크레타섬 역시 많은 풍파를 겪었다.

신석기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이곳은 미노스 문명으로 꽃을 피우다가, 로마-비잔티움-무슬림 해적국가-비잔티움을 거쳐 베네치아 공국의 400년 지배를 받다가 오스만 튀르크와의 21년 전쟁 끝에 오스만의 영토가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거쳐간 크레타는 많은 문명의 숨결이 묻어있다. 그곳들 중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오'의 상가들 그늘에는 8~9월의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모인 관광객들의 분주함이 넘쳐난다.

이라클리오는 크레타섬 관광의 시작점이다.

미노스의 미궁 관광객들

유럽의 가장 오래된 미노스 문명을 볼  수 있는 '미노스의 미궁'과 박물관이 있는 이곳을 관람한 후, 아름다운 해변을 찾아 동서로 흩어진다.

크레타의 중요 산업은 올리브 경작이다.

하늘에서 보면 끝없는 올리브나무의 초록 물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시장에 가면 질 좋은 올리브유가 넘쳐난다.

이탈리아 올리브유가 최고인 줄 알지만 싸고 질좋은 그리스 올리브유의 가성비는 이탈리아를 뛰어넘는다.

사랑의 저주가 깃든 섬 크레타!!!

제우스 신화에서는 크레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물을 빼돌린 '미노스 왕'에게 '포세이돈'은 "사랑의 저주"를 내린다.

여기까지는 아주 멋진 이야기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매우 참혹한 이야기다.

사랑의 신 '큐피드'를 이용해서 "사랑의 화살"을, 그것도 하필이면 '미노스 왕'의 부인 '파시파에'를 향해 날려 버린 것이다. 제물이었던 소가 왕후 옆에 있을 때...!!!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을 맞은 '파이파에 왕후'는 소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소의 자식까지 낳고야 마는데, 그렇게 소와 '파시파에 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미노타우르스' 다.

크레타 미노스 문명의 상징인 '미노스 왕'을 낳은 '에우로파 공주'를 소로 변신시켜 납치해 버린 '제우스'의 이야기,  '포세이돈'의 제물인 '소', 저주의 산물인 '미노타우르스'도 소+인간이다. 소가 참 많이도 등장하는 크레타 신화다.

그런데 정작 크레타에서 소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1,000km 넘게 산, 바다 구석구석 돌아다녔지만 크레타에서 보이는 짐승이라고는 산염 소가 전부였다.

이 산염소가 뛰노는 산 깊숙이 들어가면 제우스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유명한 '제우스 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제우스에 관한 유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많은 종유석들이 번개모양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제우스 동굴은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가는데 20분, 그러나 감상은 10분이면 끝나며, 입장료는 6유로(한화 약 8,300원)이니,  가벼운 트래킹으로는 한 번쯤 다녀올만하다.

제1도시 이라클리온에서 해를 따라 차로 2시간가량 서쪽으로 가다 보면 베네치아 인들의 영혼이 숨 쉬는 하니아에 도착한다.

베네치아 인들이 만든 해안 요새 위에 현대인들이 지은 집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유난히 좁은 골목길은 여행객들의 활력을 증가시키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기도 한다.

골목들을 점령한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 절로 시장기가 돈다.

그리하여 눈의 유혹에 이끌려 찾아간 그리스 맛집.

식사를 하고 나니 전통술(raki),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준다.

디저트 메뉴를 주문한 적도, 또한 이렇게 많이 주문했을 리도 없다고 하니, 어라? 모두 서비스란다. 입이 절로 벌어지는 그리스인들의 인심이다.

살다 살다 서비스로 준 디저트에 취해보긴 처음이다.  아마 이곳을 방문한 모든 한국인들은 그리스 식당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흥겨운 기분으로 올드 베네치안 하버에 도착하니,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우리를 반긴다. 

소년들은 항구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물이 더럽지는 않을까 하고 직접 물을 보니, 맑디 맑다.

크레타섬의 바닷물은 염도가 높아서 엄청 짜지만 냄새도 없고 참 맑다.

그 옛날 베네치아 왕국시대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 등대, 방파 제선과 이어지는 요새의 모습을 보니 날렵한 갤리선을 타고 시원하게 파란 바다를 가르던 베네치아 상인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베네치아 왕국의 크레타의 끝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오스만 튀르크는 21년 동안이나, 그리고 마지막 전투 땐 3만 명의 대군으로 이 아름다운 섬을 공격하여 점령한 것이다. 

베네치아 왕국의 20대의 명장들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하다 보니 어느새 40대 노총각이 됐을 만큼 길고도 치열했던 전쟁이었다.

 

이 항구의 진정한 매력은 야경이다.

둥그런 부둣가에 길게 늘어선 상가들의 불빛과 즐거운 관광객들의 웃음을 들으며 까만 바다와 칠흑빛 하늘의 하얀 별에 취해 발걸음을 딛는 가운데 올드 베네치안 항구의 밤은 점점 깊어간다.